240117 일상
2024년 새해는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
날이 추워져 집에만 있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활동적인 날들을 보낸다.
글을 안쓴지 오래되어 두서를 갖춤이 힘들다. 그래도 이것도 간만이니 감회가 또 새롭다.
20대 초반즈음부터 개발자로 살고 있고 20대가 거의 마무리되는 지금도 그렇다.
이전엔 개발과 개발자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도 하고 그것들을 꽤나 정리도 해두었다.
어느 순간, 난 그것에 대해 더 논의할 거리가 없는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해 내 사고속 어딘가에 묻었다.
개발은 무엇인가? 뻔하게는 코드를 이용해 복잡한 동작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구현하고 관리하는 작업이다.
개발자라 함은 개발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다.
너무 간단명료해서 좋았고 나에게 좋은 개발자는 개발을 잘해야 했다.
근래엔 이 두 사이의 간극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가지게 한다.
개발이 좋았다. 처음엔 신기했고 우수한 개발 역량의 지표를 밤낮으로 고뇌하며 실력을 늘렸다.
역량이 상대적으로 준수해지니 사람들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더 정진했다.
어느 순간인지, 갑자기 더 이상 실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들에 게을러졌다.
개발 공부를 인생의 업으로 삼지 않고 그냥 알고리즘 공부가, 아님 다른게 하고싶으면 했다.
왜일까? 나도 잘 몰랐다.
추구하던 경지에 다다라서? 삶이 안정되어서? 목표를 잃어서?
지금들어 생각하기엔 이렇다.
내가 온전히 공들여 쌓아올린 개발 실력으로 지금 누리는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닌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선 내 코드를 단 한줄도 읽지 않았음에도 그저 소문만으로 날 뛰어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 개발 역량이 판별될 때, 그냥 날 대강 아는 사람들의 말로, 혹은 내 블로그에 기록된 글의 숫자정도로 내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공부를 했으니 알아봐주는 이들이 생긴것 아니냐? 할 수도 있고 맞는 말이지만,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탑은 구태여 더 힘을 주지 않아도 계속 기울어져 있음이 자명하다.
그래도 난 최고의 개발자는 최고로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관철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모르는게 있으면 배웠고 까먹은게 있으면 화가 났다.
그러나 결국 깨우쳤다. 개발자는 개발도 할 뿐,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회사생활을 잘하는 것은 개발을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감성적이고 진부하다.
내가 고뇌했던 부분들과 접점이 없다.
자신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고해나 회고가 아니다. 신세 한탄이다.
요즘은 그렇게 고뇌한 시간들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냥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처럼 할 수 있었던건데, 나만 앞서나가고 특별한 것도 아니였는데,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관둘 때 모두 나에게 일을 잘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밤낮으로 개발을 하지 않았는데도 후한 평가를 받을까. 집 월세를 내려고 외주도 두개씩 받아가며 실제 회사일은 해달라는 것만 딱딱 하고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게 이리도 쉬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하는 척이 제일 쉽다. 이것이 개발자의 사회 생활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발자의 평가지표에 개발 역량을 조금이라도 쳐주는 환경이라면, 난 다른 것에 관심 없이 그것으로만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서로가 필요없어질 것이다.
존 카맥의 철학은 그의 개발 역량을 기려 존중받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문득 좋은 개발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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